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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다해/글 공부

[짧은 소설쓰기] 개 그리고 마왕

by 공부하는다해 2023. 2. 1.

개 그리고 마왕

1. 개

"하, 저 개새끼. 진짜 미치겠네. 당장 오늘 마감인데!!"

무명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짜증스레 외쳤다. 머리가 아플 만큼 시끄러운 음악을 귀에 때려 박아도 개가 짖는 소리는 여전했다. 거금을 주고 구매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어찌 된 일인지 영 제값을 못 하고 있었다.

차라리 규칙적으로 짖어 대면 그나마 나을 텐데. 무명이 헤드폰을 귀에 맞추며 생각했다. 안타깝지만 무명을 괴롭히는 저 개는 수시로, 연달아, 가끔, 미친 듯이 짖어 댔다. 물론 항의도 했다. 그 횟수가 열 번이 넘어갔을 무렵, 자신이 집에 없을 때의 일을 어떻게 하냐며 도리어 개 주인이 화를 냈다. 적반하장의 태도에 기가 찼지만, 무명은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저처럼 낮에 집에 있는 사람이 몇 집, 아니 한 집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때 그냥 아파트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무명은 한적한 시골 주택에 덜컥 이사한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무명이 입술을 씹으며 두 단계 볼륨을 높였다. 그렇지만 컹컹대는 소리는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작가인 무명은 집에서 일하는데 지난 몇 년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는 곳이 번화가에서 멀었으나 그가 원하는 조용한 삶을 선사해 주었다. 터치 몇 번으로 집 앞에 생필품이 도착하는 시대이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무명에게 집은 집필을 하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 조금 떨어진 옆집의 주인이 바뀌고 망할 개새끼들을 키우기 전까지 말이다.
카페나 도서관도 가보았지만 무명에게 맞지 않았다. 자신은 방에 틀어박힌 채 써야 글이 나오는 작가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짜증 나."

무명은 오전부터 계속되는 소음에 지쳐버렸다. 커피나 한 잔 하며 머리 좀 식혀야겠다. 생각하며 무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나가니 소음이 한결 더 크게 느껴졌다. 개들은 무명이 커피 믹스를 탈탈 털고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 순간까지 계속 짖었다.

달콤한 향이 올라왔다. 무명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커피를 머금었다. 뜨거운 액체가 입술과 혀에 닿고 입 안을 채웠다. 혀가 데는 느낌에 무명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꿀꺽- 커피를 넘기자 뜨끈한 기운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순간이지만 소음에서 벗어난 착각이 들었다. 무명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좋아! 집중하자!”

무명이 찰랑이는 머그잔을 들고 다시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자신에게 암시를 걸며 무명이 크게 심호흡하며 헤드폰을 썼다. 답답하고 완벽히 소리를 막아주지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 나았다.

무명은 잔잔한 클래식이나 백색소음을 배경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지금은 몸이 쿵쿵 울리는 오케스트라나 경쾌한 혹은 웅장한 클래식을 듣는다.

가사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 전과 상당히 다른 선곡이다. 어떻게 해서든 소음을 덮어보려는 시도였다. 무명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신경질적으로 움직인다. 모니터 상단에 볼륨을 표시하는 숫자가 나타났다. 22, 24, 26. 수가 커질수록 바이올린의 선율이 날카롭게 귀에 파고들었다. 그러나 개들은 만만치 않았다. 개의 목청은 끝내 섬세한 음을 만들어내는 관현악기를 이기고 불협화음을 선사했다.

순간 울분을 참지 못한 무명이 책상을 쾅- 내려쳤다. 둔탁한 통증이 굽혀진 손날을 강타했다. 책상 위에 있는 머그잔에 진동이 전해져 미처 다 마시지 못한 내용물이 손등에 튀었다. 무명은 욱신거리는 감각을 무시하며 짙은 색의 물방울을 입술로 훔쳤다. 이어서 머그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뜨끈한 액체를 가득 머금고 꿀꺽 삼키니 인상이 절로 써졌다. 깔끔하게 컵을 비운 무명이 기도했다.

아, 진짜 누가 개 좀 조용히 시켜줬으면 좋겠다. 제발요, 이렇게 빌게요. 부처님, 하느님, 알라신 님, 마리아 님, 옥황상제님-
무명이 아는 신을 총동원했다. 늘 하는 기도이지만 오늘은 정말 간절했다. 중얼대는 모습이 광신도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명은 무교였다.

나름의 의식을 끝낸 무명이 모니터를 노려봤다. 작은 스크롤바를 움직이니 작업화면에 텍스트가 쏟아져 내렸다.

 

2. 마왕

늘 집중이 안 되어 시간에 쫓기듯 썼던 무명이었다. 한데 오늘은 예상과 달리 아주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했다. 오늘 무명은 개가 없던 날처럼 신명 나게 글을 써 내려갔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쁨에 무명이 번쩍 손을 들며 만세를 외쳤다. 늘 해온 일이었지만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노동요가 좋았나. 아니, 아니야. 개가 짖지 않았어?

무명이 조심스레 헤드폰을 벗었다. 와, 세상이 다 조용하네. 짧은 감상이었으나 피곤함에 찌든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충족감에 무명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만족하나?"
"...?! 뭐, 뭣!?"

고요함을 만끽하던 찰나에 들리는 낯선 이의 목소리였다. 화들짝 놀란 무명이 경기를 일으키듯 의자에서 튀어 올랐다. 의자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무명은 자신의 앞에 있는 자를 처음 보았다. 그러나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무명은 자신이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지 않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 자니까. 하지만 정말 이 남자는.

“... 마, 왕?”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다니. 무심결에 뱉고만 단어에 무명은 고개를 들기 힘들었다. 작가이면서 자기 소설에도 쓰기 힘들 부끄러운 대사를 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 탓이다. 그러나 금세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낯선 사람, 아니 마왕을 앞에 두고 할 행동이 아니었다. 용기를 내 정면을 보니 놀랄 만큼 수려한 남자가 짓는 미소는 보게 되었다. 경이롭고 어딘가 신비했다. 다시금 '아, 마왕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개를 조용히 시켜주었어. 이제 그대에게 계약의 대가를 받고 싶군.”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무명은 상대의 말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저기, 무슨 대가요? 아니. 그전에 제가 언제 계약했다는 말씀입니까?”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은 탓에 마지막에는 목이 잠기고 말았다. 밀려드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진 무명은 괜스레 콜록거리며 기침했다.

"그대가 나를 불렀잖아.”
“큼, 큼. 제가요?”

반문에는 무명의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나를 부르는 음악을 들으며, 악마의 음료를 마시고, 기도했잖아?"

마왕은 검지로 무명의 심장 부근을 지그시 눌렀다. 울렁거리는 느낌에 무명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재빨리 몸을 돌려 음악 채널의 플레이 리스트를 살폈다.

리스트에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이 있었다. 그리고 키보드 옆에는 갈색 얼룩이 묻어 굳어 있는 커피잔이 있다. 뭐 이런 미친 경우가 있나. 무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 고작 이 정도로 마왕이 온다고? 이럴 거면 개를 조용히 하는 게 아니라 로또 1등 당첨을 기도했지!

"이제 대가를 받아야겠어."
"잠시만요!!"

가슴 쪽으로 손을 뻗는 마왕의 행태에 기겁하며 무명이 소리 질렀다. 두려운 나머지 양손으로 마왕의 손을 꽉 잡기까지 했다. 차가울 거로 생각했던 마왕의 손은 의외로 따뜻했다. 그러나 무명은 온도까지 세세히 파악할 정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공황을 일으키기 직전의 상태였다.

대가? 대가라면 역시 영혼 뭐 이런 건가?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의 내용이 주마등처럼 무명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제 막 마감도 끝냈는데, 빌어먹을 개 때문에 죽는다고? 당황하는 무명을 보며 마왕의 미소 지었다.

"그대는 여전히 겁이 많군. 무서워할 건 무엇 하나도 없으니 염려 마."

마왕이 다정하게 말하며 무명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무섭게 두방망이질하는 무명의 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왕은 마치 작은 동물이 팔딱거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꽤 귀엽게 느껴졌다. 마왕의 생각을 알 길이 없는 무명은 그저 제 몸에 닿은 손이 너무나 무서웠다.

“이제 끝났으니 눈을 떠도 괜찮아.”

마왕의 손이 떨어지고, 종료를 알리는 말이 들렸다. 무명이 눈을 뜨고 제 몸을 살폈지만 변한 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왕의 눈에는 무명의 심장 언저리에 맴도는 마기가 선명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가를 받았다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마왕은 무명에게 받지 않고 주었기 때문이다. 마왕은 허둥거리는 무명을 보며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당장 제 곁으로 다시 오게 하고 싶지만, 무명은 이 세계의 신이 만든 윤회에 걸려있었다. 그래서 약간의 작업이 필요했다.

사실은 윤회를 거듭해 업을 쌓아야 하지만, 마왕은 편법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직접 업을 밀어 넣는 방법이다. 마왕의 정기는 이 세계의 인간에게 업보나 다름없으니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물론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나 그건 차차 조정해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니까 마왕이 무명에게 말했던 계약이니 대가니 하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모두 마왕이 꾸민 일이니까. 먼 훗날 무명이 죽고 난 뒤의 일을 위한, 이를테면 마왕의 물밑작업이었다.

당연하게도 이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마왕은 앞으로도 꾸준히 무명 옆에서 업을 쌓아주어야 했다.

"이 세계에는 개들이 많아. 그대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시켜줄게. 물론 대가는 그때마다 받겠지만."
"세계요? 아니, 아니요, 저는 그냥 옆집 개만."
"안타깝지만 한번 한 계약은 무를 수 없어. 이해해 주겠나?"

아니요. 못하겠는데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부정을 말을 무명이 꾹꾹 눌러 삼켰다. 마왕은 무명의 불만을 눈치채지 못한 척 시치미를 뗐다.

마왕은 현 상황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사실 마왕이 커피나 노래를 듣고 세상에 강림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 세계에 마왕이 그냥 나타나면 질서에 어긋난다. 소환을 거쳐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신들 간이 정해 놓은 규칙이다. 그래서 마왕은 이 작은 순간을 기다려왔다. 몇 번의 윤회를 거친 정말 길고 긴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조금 억지이긴 해도 괜찮아. 마왕은 합리적인 결론이라 확신했다.

마왕은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잡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계약의 내용이 좀 우습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마왕이 생각하기에 이건 아주 좋은 계약이었다.

세상에 개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무명은 남은 평생 개가 내는 소리는 절대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대가를 받게 될 테지만.

마왕이 머리를 감싸 쥐는 무명을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END.


이미지 출처 :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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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 A4 용지 1~3장 분량의 소설 2편을 쓰는 것이 소설장작 기말과제였다. 두 작품을 썼고 그 중 한 편이 본 글이다.

랜덤 키워드를 돌렸는데 개랑 마왕이 나왔는데 어찌어찌 잘 이어붙인 것 같다. 아버지 역할은 현세계의 신이고, 무명은 아들이고, 마왕은 마왕의 역할쯤 될까.

만약 이 글을 계속 썼다면 슈베르트의 마왕의 내용처럼 주인공 무명은 결국 죽었을 것 같다. 마왕이나 현세계의 신 중 누가 의도 했는지는 일단 고민해보고, 일단 이세계에 부활시켜야겠다. 그래서 갑자기 이세계물이 되는 거지!! ㅋㅋㅋ 아니면 로판 배경도 재밌겠다. 장르를 못 정했으니 어느 부분에 비중을 둬야 할 지 모르겠네. 일단 마왕은 주인공 짝이 맞음 ㅋㅋㅋ

부활, 환생, 전생, 빙의는 일단 고민!! 성별이랑 시간대도 마찬가지로 해야지. 좀 헷갈리게해서 무명의 자아를 가진 주인공의 뒷통수를 때리는 요소로 쓰고 싶다.

판타지 세계 같으니 뭔가 특별한 능력도 주고 싶은데... 테이머? 동물이나 마수 잘 길들이는 게 좋겠어! 특히 개가 주인공을 너무 잘 따르는 거지. 여기서 현시대에 개가 무명만 보면 짖는 부분과 살짝 충돌나게 표현해서 의문을 가지게하고 나중에 떡밥 회수를 하면 그럴싸하지 않을까? 라고 행복 회로를 돌려본다...ㅋㅋ

어쨌든 이 글은 여기까지 ><!! 나중에 내키면 다시 구성을 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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