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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다해/독서감상문

[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악마 / 신부 세르게이

by 공부하는다해 2022. 4. 5.

책 제목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수록 작품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악마 / 신부 세르게이 )

저자 : 레프 톨스토이

출판사 : 문예출판사


이반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에서 주변 인물과 가족의 모습을 먼저 보여줬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이반 일리치의 일생이었다. 책의 제목도 그렇고 서두가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이기에 글의 끝이 짐작 갔다.

 

이반 일리치의 병이 깊어지며 시작되는 독백과 내면세계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결말을 알기에 더 몰입이 되어 그런 것 같다. 덕분에 조금씩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백신 맞고 나서 읽으니까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갔는데...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이반이 게라심을 아끼는 마음이 너무 이해갔다. 나도 몸살이 나서 몸이 너무 아팠는데 신랑이 게라심처럼 날 돌봐주니 너무 고맙고 감동했거든.

 

마지막에 올바르다고 여겼던 자신의 삶이 아님을 인정하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에 그가 번뇌에서 벗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죽음이 없었으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도 전혀 없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분노와 고통, 거짓과 위선에 가득했던 삶의 끝자락에서 용서와 안식을 얻게 되어 다행이다. 이반의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위선과 고통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서두의 장례식에서 그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이반의 내면을 보고 깨달음의 과정을 함께한 나는 아니겠지? 나도 내 삶을 돌아봐야겠다. 죽음은 대수롭지 않은 상처로부터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마음에 드는 인물은 게라심이었다. 그는 이반의 구원자이자 깨달음을 주었던 선지자 같은 역할로 작가의 욕망이 투영된 인물 같다. 농부이고 신앙심이 깊고 젊고 선량하고 튼튼하고. 톨스토이가 농부가 되고 싶다고 했다던데 게라심이 바로 자신이 되고 싶어했던 인물이 아닐까.

 

어쨌든! 게라심은 빛!!! 빛라심이다.

 

 


악마

이르테네프 너무 답답하고 쓰레기 같았다. 성욕에 노예로 밖에 보이지 않아.

 

고통을 끝내는 방법으로 리자 또는 스테파니다를 죽여야 한다고 했을 때는 너무 화가 났다. 그러다 자살하는 것을 보니 아니 이게 죽을 일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뒤에 또 다른 결말이 있는 거야. 거기선 스테파니다를 죽이고 감옥에 들어가다 알콜 중독자가 되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걸 보니 차라리 자살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젊은 나이부터 정신적 압박이 꽤 심했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약한 인간이라고 느껴졌다. 악마 편은 너무 답답하고 예브게니 내면 묘사를 보며 짜증나고 화났다. 그래서 끝났을 때 너무 좋았다.

 

톨스토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로 결말이 두 개가 있는 이유는 미완이기 때문이다. 뒷이야기를 보니 톨스토이 한테 조금 정이 떨어졌다. 과거 이야기 왜 아내한테 해서 괴롭게하냐. 자기만 잘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자기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남을 괴롭게 하는 것도 가스라이팅이지. 그래도 자기 죽은 다음에 출간해서 다행이긴 하다.

 

솔직히 말해서 공감이 전혀 가지 않는 이야기 이었다. 그래서 성욕을 다른 욕망- 그러니까 지름 욕구라던가 식욕 등에 대입해보았다. 그러니 조금 공감이 갔다. 물론 남을 죽이거나 자살하고 싶을 만큼 자괴감이 들 정도는 아니다.

 

욕망에 지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적당한 욕망은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좀 삐딱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글의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까. 어쨌든 그랬다!!!!

 

 


신부 세르게이

앞의 ‘악마‘편에서는 육체적 욕망에 무너져 내리는 사람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정신적 욕망에 무너지는 사람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오랜 수행을 하며 산 수도자 또한 허영심과 욕망에 흔들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결국 세르게이는 육체의 욕망에 무너져 내렸다. 다 늙은 노인이 그런 게 참... 어쨌든 그는 파셴카를 만나 세속적 욕망에도 굴복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난 또 파멸로 끝나는가 싶어 약간 걱정했다. 허나 그는 이름을 버리고 하나님의 종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진짜 순례자가 되었다.

 

이번에도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름대로 해피엔딩 같아 다 읽고 찝찝함이 남지 않았다. 찝찝함은커녕 마지막의 현재 진행형 문구(전편들이 죽음과 비극으로 끝나 그런것 같다.)에서 희망을 느낀 것 같다.

 

신앙심은 없지만, 나도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무리한 욕망에서 자유롭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 말이다.

 


총 평

세 편의 작품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삶을 주제 한 작품들은 전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름대로 육체, 세속적 욕망에 초연하다고 자부하는 나인데 읽으며 저런 생각도 허영이나 오만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꼭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욕망에서 벗어나 살 필요가 있을까.

 

물론 고통의 시발점이 욕망임을 안다. 승려와 철학자의 마티유는 실체가 없는 의식의 흐름에- 그러니까 생각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자아에 대한 집착을 떨어낼 수 있으니까. 이 책을 보니까 다시 승려와 철학자를 다시 정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악마, 신부 세르게이라는 세 작품 엮고 순서를 정한게 참 잘한 것 같다. 각 챕터의 인물이 각기 다른 욕망, 이반은 삶, 예브게니는 성욕, 세르게이는 성욕은 극복했으나 명예욕 같은 것에 무너진다. 여기서 앞의 두 작품은 결말이 뭔가 끝난 느낌인데. 마지막 작품은 현재 진행 느낌으로 마무리 된다. 그래서 좋았다.

 

이렇게 생각할 여지를 일으키는 책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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